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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 /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할까?
김 정 애/ 동화작가
발행일20260126

지난해 마지막 날, 해가 지고 창밖에 어둠이 내리던 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어깨가 심하게 뭉친 날이면 초저녁잠을 좀 자는데, 그날도 종일 컴퓨터와 씨름을 한 다음이라 눈과 어깨를 쉬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눈꺼풀 안으로 얼굴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의 책을 보내준 동화작가들,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일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 동화를 지도해주셨던 선생님, 시골로 가셔서 인문학당을 열고 계시는 선생님. 억새밭을 헤쳐 나가듯이 한 발짝씩 더디게 공부의 길을 나아가는 중이라 안부 인사도 감사 인사도 전하지 못했던 선생님들 얼굴이었다. 해가 바뀔 때까지 몇 시간밖에 안 남았지만, 카드나 연하장을 고를 필요도 없고 우표 붙인 봉투를 들고 우체통까지 갈 필요도 없으니 인사할 시간은 넉넉했다. 하고 싶은 인사말을 누르고 오타가 없는지 확인한 후 전송 버튼을 누르자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그리고 속속 타인의 마음이 담긴 답글을 데리고 온다.
그날 받은 답글 중에 2025년 12월 31일의 일출이 담긴 영상이 있었다. 보는 순간 오늘 저문 해가 저렇게 떠올랐구나' 하고 뭉클한 감동이 일어났다. 1월 1일 아침에도 인사들이 오갔고, 어김없이 새해 일출 사진도 전송받았다.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의 해와 새롭게 출발하는 날의 해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야트막한 동산 위의 묵은해와 넓게 펼쳐진 바다 위의 새해가 진한 주홍빛 아침놀 가운데서 황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두 해는 다른 해, 이제 또 한 살, 나이를 먹었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지난해 연말에는 친구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 자녀 중에서는 첫 결혼이었다. 혼주가 된 친구를 보니 새삼 초등학교 꼬꼬마였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친구 딸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의 행진까지만 보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사진 촬영은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모임에서 자주 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동창회에서나 볼 수 있는 친구들도 있어서 오랜만에 모여 앉은 식사 자리는 흥성거렸다. 초등학교 때 짝지를 했던 친구 둘은 책상 한가운데 선을 긋고 팔이나 학용품이 선을 넘으면 꼬집어주던 일을 이야기했고 다른 친구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시간 동안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았다.
새해가 되고 열흘쯤 지났을 때 대학원에서 알게 된 젊은 선생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 되는 사람도 공부하는 사람이라 양쪽 다 연구자 하객들이 많았다. 요즘 보기 드물게 주례를 맡은 교수님이 있었고, 축가도 밴드 출신이라는 어느 교수님이 불러주었다. 나는 혼주의 지인이 아니라 신부의 지인으로 참석했기 때문에 행진이 끝나고도 식당으로 가지 않았다. 가족들 사진 촬영이 끝나고 동료 지인들 사진 찍을 차례가 왔다. 연구자 동료들은 2, 30대가 많고 40대도 있다. 평소 나는 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젊은 지인들과 사진에 박혀도 될까? 이럴 때는 빠져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민망한 마음에 "같이 찍어도 괜찮을까요?" 하고 옆에 있던 선생님에게 말하니 "사진 중요하잖아요."하고 대답한다. 스스럼없는 그 말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젊은 동료들 틈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에는 나이가 결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이는 때로 숫자에 불과해서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나이는 그 자체로 무게를 지녀서 버거워진다. 나이가 계속 숫자로만 머물게 할 수는 없을까? 나이가 그 자체로 무게를 가진다면 그 무게를 덜어낼 방법은 없을까?
내가 공부하는 것을 언제나 기껍게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다. 공부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음에도 그들은 흐뭇하게 여긴다. 때로 밥을 사주고 때로 커피를 사준다. 응원이 감사하고 힘이 되지만, 무엇이 그들을 흐뭇하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이 나이의 무게를 이겨내는 일이라서일까.
머릿속에 어떤 상황을 하나 설정해본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이 나와 함께 공부한다고 치자. 그분과 함께 사진 찍을 일이 있다고 치자. 그분이 민망해하며 안 찍겠다고 한다 치자. 그러면 나는 그분에게 뭐라 말할 것인가. 틀림없이 같이 찍자고, 같이 찍어야 한다고 강권할 것이다. 어쩌면 타인은 언제든지 나이를 숫자로 봐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아닐까. 자신만 자신의 나이를 무겁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어떻게 할까? 나는 앞으로 나이 때문에 민망한 느낌이 들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 젊은이들 사이에 서서 사진을 찍고 싶을 땐 언제든지 그렇게 하겠다. 올 한해, 나이는 숫자 이상으로 무겁겠지만 어떻게든 가볍게 살겠다.
담당부서정책기획실 기획예산과
담당전화번호 051-605-4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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