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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이 쓰는 부산진이야기 <87> / 서면과 금수현

국민 가곡 그네 원본 어딨는지 아시나요?

발행일20260325







금수현(1919년∼1992년)은 작곡가다. 국민 가곡 그네'를 작곡했다. 아들이 지휘자 금난새다. 금수현은 어디 사람일까. 부산 사람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전국구 지명도를 갖춘 예술인이라서 "부산 사람!" 그러면 "정말?" 반문하는 이가 꽤 된다. 하지만 정말이다. 문화도시 부산의 아이콘이 금수현이고 금난새다.

금수현은 서면 사람이기도 하다. 부산상고 24회 졸업생이다. 금수현이 재학하던 1930년대는 5년제였으니 서면에서 보낸 기간도 5년이었다. 실업계 부산상고에서 인문계로 전환한 부산진구 당감동 개성고는 역사관에 금수현 특별관을 별도로 두고 그를 기념한다. 5학년이던 1937년 탁구부를 지도한 공로로 받은 상장이며 증명서, 1940년 일본 동양음악학교 성악과 졸업 증서, 금수현 관련 희귀 음반과 우표, 축음기 등을 전시한다.

숨이 멎을 만큼 놀라운 전시품도 있다. 그네' 악보 원본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음보 하나하나 금수현이 육필로 채워놨다. 곡을 작곡한 1947.5'와 모교 부산상고에 드림' 표기는 친필. 부산의 국보, 한국의 국보가 아닐 수 없다. 1992년 선생 타계 후에 부인이 기증한 유품 피아노도 반갑다. 건반 하나하나 스몄을 선생의 온기, 선생의 숨결.

피아노는 선생에게 각별했다. 부산상고 재학시절에도 그랬다. 학교가 파하면 일주일에 이틀은 수정산 언덕에 올랐다. 동기 김태우의 초가집이 거기 있었고 그 집엔 동기의 형님이 쓰던 피아노가 있었다.학교와 교회를 빼곤 부산 전체에 피아노가 다섯뿐이던 시절이었다. 음악 애호가 형님은 객지에 있어서 눈치 보지 않고 피아노를 썼다.

부산상고 강당에도 피아노는 있었다. 음악 시간은 따로 없었고 체육 교사가 관리했다. 주로 신입생에게 교가 가르치는 용도로 썼다. 칠판에 적은 악보를 보며 교가를 익혔다. 칠판 악보에 오류가 있었다. 신입생 금수현은 그걸 지적했고 그 이후 피아노를 사용할 수 없었다.

피아노 사용을 금지당했던 금수현에게 동기 김태우의 피아노는 구세주였다.피아노가 왜 구세주였을까. 음악학교 진학과 관련됐다. 동기들 대부분은 은행이나 회사에 가려고 했으나 금수현은 음악학교에 뜻을 두었다. 미리 받아본 일본 음악학교 입시요강엔 피아노가 필수였다. 일주일에 이틀은 수정산 친구 초가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한 이유였다. 동기네 피아노가 없었으면 음악학교 진학은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작곡가 금수현을, 그리고 지휘자 금난새를 탄생시킨 피아노였다.

부산상고생 금수현의 통학로는 일정했다. 집이 있는 대저에서 자전거로 구포역까지 갔고 거기서 부산진역까지 기차로 통학했다. 부산진역에선 서면 학교까지 걸어갔다. 늦잠을 자서 기차를 놓치면 학교까지 자전거로 내달렸다. 중간에 언덕이 있어서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돌아올 때도 자전거를 타야 했으니 고생이 막심했다. 가능하면 지각하지 않으려 했고 성실한 삶으로 이어졌다.

"부산상고 무서워서 서울상고가 없습니다."

부산상고는 전국 최고 수준의 상업학교였다. 서울대 상대와 맞먹었다. 대구상고니 목포상고니 지역명을 내건 상고는 많지만, 서울만 유일하게 서울상고가 없다. 개성고역사관 노상만 관장은 그 이유가 부산상고라고 했다. 저 멀리 앞서 나가 있는 부산상고를 도저히 따라잡을 재간이 없으니 서울상고가 없는 거라고 단언했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금수현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독보적인 아이콘. 독보적인 문화 아이콘을 품은 도시가 서면이고 부산진구다. /  동길산 시인

 

-사진설명-

(1) 당감동 개성고 역사관 특별관의 금수현 유품. 금수현 친필 그네' 악보와 그의 숨결이 스며든 피아노는 특히 반갑다. 금수현은 개성고 전신인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24회다.

(2)강서구 녹산수문 인근 김말봉 문학비에 새긴 그네' 시. 그네'를 작사한 김말봉 소설가의 사위가 금수현이다. 금수현 모교 대저초등학교 도로에는 기념 가로등을 세웠다.

(3) 금수현이 부산상고 다니던 일제강점기인 1929년 제작한 지도에 보이는 부산진과 부산상고(지도에는 제2상업학교). 강서구 대저에 살던 금수현은 구포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진에 내린 뒤 서면 부산상고까지 걸어서 통학했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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