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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 / 시간이 가져가 버리는 것  

김 정 애(동화작가)

발행일20260527



연로하신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지 석 달이 되어간다. 이제야 어머니 눈에 집이 좀 익어가는 모양이다. "여기가 어데고?"하고 묻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어머니는 지난겨울에 넘어지면서 손목을 접질렸다. 화장실 문턱을 넘다가 그랬다고 한다. 어머니는 허리와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몸을 지탱하려고 손목을 많이 쓴다. 잡거나 짚지 않으면 일어나는 것도 눕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목을 자꾸 쓰다 보니 보호대를 하고 있어도 퉁퉁 붓고 통증도 심해져 아예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팔 통증 치료가 급했다. 시골에서 모시고 와 병원으로 갔다. 진료와 검사를 다 마치고 입원 치료를 하기로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계속 화를 냈다. 의사 선생님이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신이 병원에 왔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검사를 받는 동안에는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고 내지르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렸다. 입원실을 배정받았을 때, 어머니는 침대에 눕지도 않고 화를 냈다. "내가 집이 없나, 돈이 없나, 아들이 없나. 내가 뭐 하러 여기 있을 끼고. 와 내를 여기 있으라 하노"하며 완강하게 입원을 거부했다. 그곳이 요양원이라고 단단히 착각한 것 같았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병실 도우미분들도 고개를 내둘렀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파도 그냥 집에 가실랍니까?" 물으니 단호하게 "그래"하신다. "그럼 집에 가입시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꼬부라진 몸으로 성큼성큼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갔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놀라웠다. 그날로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화를 내느라 힘을 너무 써서 그랬는지 며칠 동안은 식사 시간과 화장실 갈 때를 빼고는 내내 잠을 잤다. 잠이 깨면 당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어머니는 이미 단기 기억 상실 증세가 심했고, 옛날 일을 요즘 일로 생각해 엉뚱한 말을 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요양보호사가 날마다 방문하고, 주말에는 아들들이 내려가는 정도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이 아파 더는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지, 이틀도 안 지나서 계속 같은 말씀을 하셨다. "여기가 어디고?" "부산 막내아들 집이지예." "내가 와 여기 있노?" "아파서 왔지예." "온 지 오래 되었제? 집이 감감하다. 내일 데려다주라." "혼자 못 계십니더." "늘 혼자 있었는데 와 혼자 못 있어? 집을 너무 오래 비워놔서 가야 돼."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온 첫 주, 둘째 주는 참 힘들었다. 집에 가겠다'는 강한 생각이 기본생활을 방해했다. 옷 갈아입는 것도 목욕하는 것도 "내일 우리 집에 가서 할 낀데 와 이래쌌노"하며 순순히 응하지를 않으니 쉽게 할 일도 어렵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이 조금씩 해결된다. 노인 돌봄 서비스가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목욕 서비스와 주간 보호 센터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어머니도 떨어졌던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 눈빛도 또렷해졌다.

이제 여기가 어딘지도 덜 헷갈린다. 여기는 부산 막내아들 집이고, 아파서 이곳에 왔다는 것은 아는 것 같다. 이제는 데려다 달라는 말도 덜 하는데, 앞으로도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은근히 생각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심각한 단기 기억 상실 증세는 여전해서, 금방 했던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되풀이한다.

어버이날에는 아주버님들이 어머니를 뵈러 왔다. 아주버님들이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도 한참 나누고 돌아간 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금방 왔다 간 사람이 누고?" "예? 아주버님들 오셨다가 인제 금방 가셨는데 그걸 까먹었습니꺼?" "왔다 간 사람들이 갸들이라? 와 왔노?" "어버이날이라고 어머니 뵈러 왔지예." 대답하다 보면 질문은 어느새 누가 왔는지로 돌아가 왜 왔는지로 이어진다. 나는 "어머니. 벌써 백 번째 똑같은 거 물어보셔서 나 이제 지쳤어예. 고만 물어보이소"하고 힘든 티를 낸다. 그러면 어머니는 무안한 기색도 없이 "내가 자꾸 물어보제? 내가 정신이 없다"한다. 다시 이야기가 되풀이되기 전에 텔레비전을 켜드리고 잠깐 부엌이나 방으로 도망을 간다.

좀 있다 곁으로 가면, 어머니는 텔레비전 대신 창밖을 골똘히 보고 있다. 깊은 생각에 빠진 얼굴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꺼?" 어머니는 여전히 골똘한 채로 "정신이 다 오데로 가네?" 한다. 그 말에 바로 머릿속의 정신이 연기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어머니의 맑던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을까. 시간은 그 아깝고 귀한 것을 자꾸만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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