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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이 쓰는 부산진이야기 <88> / 삼화 기숙사

한국 유일한 신발 여공 보금자리

발행일20260728







삼화는 신발 대기업이었다. 부산진구 범천동에 있었다. 나의 첫 직장이기도 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햇수로 7년을 다녔다. 다니는 내내 기획부에 있으면서 기획을 비롯해 홍보, 사사 편찬 일을 했다. 사보 제작도 맡았다. 매달 내는 사보는 회사 바깥보다는 회사 안쪽 이야기를 주로 실었다.이른바 사내보(社內報)였다.

회사 안쪽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관리직은 관리직대로, 생산직은 생산직대로 그들만의 돌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1만 명 안팎에 이르는 생산직의 이야기는 아프면서 감동적이었다. 낮으면서 높았다. 한 달 10만 원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서 시골집에 보낸 저축 수기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 등등 애환이 차고 넘쳤다.

생산직은 대부분 여자였다. 남자와 비율이 2:8 또는 3:7 정도로 여자가 많았다. 미혼도 많았고 학교 다닐 나이도 많았다. 부산에 집이 있는 이도 많았지만, 타지인 사람도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숙사가 들어섰다. 처음엔 민가를 개조해 기숙사로 썼다가 나중엔 아예 기숙사 건물을 지었다. 삼화만 그런 게 아니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신발 대기업 대부분이 그랬다.

지난 1983년 6월 3일 착공한 범일공장 신축 기숙사 준공식이 지난 (1984년) 2월 26일 오전 10시 신축 기숙사 지하 식당에서 있었다. 이번 준공된 신축 기숙사는 1983년 당사 경영방침 중의 하나인 「종업원 복리후생 증진」 일환으로 건설된 것인데 종전 전포동의 구 기숙사가 오래된 노후건물로서 기숙사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축하게 된 것이다. (이하 생략)' - 삼화 사보 1984년 2월호 1면

기숙사는 금남의 집이었다. 남자는 용무 없인 출입 불가였다. 나는 예외였다. 사보 취재를 명분으로 짬짬이 들렀다. 미담 사례가 있다든지 하면 미리 방문일시와 대상을 정해서 협조를 구했다. 삼화 기숙사는 공장별로 여러 군데 있었다. 가장 큰 데는 범천동의 범일공장 맞은편에 있었다. 사보에서 인용한 1984년 신축 지하 1층, 지상 5층의 그 기숙사였다. 사보 취재를 위해 방문하면 기숙사 사감의 안내를 받았다. 입구를 지나자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왔고 긴 복도 양옆으로 방이 이어졌다. 최대 1,300명이 여기서 생활했다.

기숙사엔 젊은 에너지가 넘쳤다. 규율이 엄하다든지 겨울에 냉방이다든지 하는 하소연은 있었어도 에너지는 그런 것들을 뚫고서 솟구쳤다. 기숙사 사람들은 무엇보다 강했다.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푸시킨의 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순정했다.

공순이' 소리를 듣는 직장에 다녔어도 삶이 낮지는 않았다. 오히려 높았다. 아파봤기에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함께 나아갔다. 언제 가봐도 기숙사엔 강하고 순정하고 높은 에너지가 넘쳤다.

 범일공장 기숙사는 지금도 있다. 범천경남아파트 맞은편 크린토피아 뒤쪽의 5층 건물이 거기다. 1992년 삼화 도산 이후 봉제 등 중소 업체들이 입주했다가 지금은 빈 건물 상태다. 모르고 보면 40년짜리 건물에 불과할지라도 알고 보면 1980년대 한국 신발을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시켰던 주역들의 보금자리였다. 현재 한국에 단 하나 남은 신발 여공' 기숙사라서 그 가치는 천금이고 만금이다. 아무리 멋진 박물관을 새로 지어도, 아무리 멋진 기념물을 새로 세워도 주역들의 손때가 묻고 마음 때가 묻은 당대의 흔적에 비하랴. 노후해서 언제 허물지 모르는 만큼 늦기 전에 마음을 모으면 어떨지 싶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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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 삼화 사보 1984년 2월호에 실린 부산진구 범천동 삼화의 신축 기숙사 준공식 기사. 한국에서 유일한 신발 여공' 기숙사다.

2. 삼화 기숙사 현재 모습. 범천경남아파트 맞은편에 있다. 크린토피아 뒤쪽의 5층 건물이다. ⓒ동길산 시인

3.  삼화 기숙사 생일 잔치. 그달의 생일자를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잔치를 열었다. ⓒ동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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